안녕하세요! 치다입니다! 오늘은 조선의 제13대 왕 명종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 )
조선 제13대 왕(재위 1545∼1567).
< 을사사화 >
1545년, 인종이 재위 약 9개월 만에 죽어버리고 12세 경원대군이 왕위를 이으니 그가 바로 조선의 제13대 왕 '명종'이다. 어린 명종을 대신하여 어머니 문정왕후가 8년 동안 수렴청정을 하는데, 조선 최고의 치맛바람으로 유명한 문정왕후의 극악함에 명종은 평생 눈물로 왕위를 지켜야 했다. 35세라는 늦은 나이에 어렵게 얻은 아들이 드디어 바라고 바라던 임금이 되었으니 이젠 문정왕후의 세상이었다. 야망가 문정왕후는 다른 왕후들처럼 뒷방 늙은이로 앉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명종 1년, 중종 때부터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이던 대윤(윤임)과 소윤(윤원형)이 제대로 한판 붙게 되었다. 대윤과 소윤은 중종의 친인척을 가리키는 용어였는데, 전임 왕비였던 장경왕후의 일족인 윤임 일파를 대윤이라 하고 후임 왕비인 문정왕후의 일족인 윤원형 일파를 소윤이라 했다. 소윤파 정순붕이 대윤파를 몰아내려고 이런 상소를 하나 올렸다.
[정순봉] "윤임이 명종을 몰아내고 다른 왕족을 왕으로 세울 역모를 꾀하는 줄로 아룁니다." 이것을 본 문정왕후는 먹잇감을 덥석 물었고 자신을 지지하는 소윤파와 함께 대윤파를 대거 숙청해버렸다. 이 외척 간의 싸움에 휘말린 수많은 사림 세력들은 1545년 또다시 우르르 목숨을 잃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조선 4대 사화 중 하나인 을사사화 이다.
< 양재역 벽서 사건 >
현재의 서울 서초구 양재동 일대가 옛날엔 경기도 과천이었는데, 을사사화 2년 뒤인 1547년, 당시 경기도 과천이었던 양재역 근처에 익명의 벽서 한 장이 나붙게 된다. '여주가 위에서 정권을 잡고 간신 이기 등이 아래에서 권세를 농간하고 있으니 나라가 장차 망할 것을 서서 기다릴 수 있게 되었다. 어찌 한심하지 않은가.' 이렇게 문정왕후의 섭정에 불만을 표한 이 벽서가 알려지자, 문정왕후는 다시 윤원형 반대 세력을 완벽히 숙청시키려 하였다. 사실 이것은 그렇게 대단하지도 않은 일을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 고의로 부풀린 사건인데, 이것을 일명 양재역 벽서 사건이라고 불렸다. 그 결과 반대파 여러 인물이 사사되고 사림파도 유배된다. 이 사건으로 2가지 사실을 알 수 있는데, 첫째, 당대 사람들이 윤원형 같은 외척 세력을 엄청 싫어했고 둘째, 문정왕후가 거의 당대 여왕으로 불릴 만큼 기세가 대단했다는 것이다.
< 외척 전횡 시대가 도래하였다 >
그녀의 남동생 윤원형 일파가 이렇게 적들을 다 제거하고 조정을 완전히 장악하니 이른바 외척 전횡 시대가 도래하였다. 이제 명종은 그들의 횡포 속에서 눈물로 세월을 보내게 된다. 문정왕후는 처음 8년만 수렴청정했으나, 그 이후에도 계속 강한 존재감을 펼쳤다. 그녀가 살아있는 동안은 그야말로 그녀와 외척의 세상이었고 문정왕후 동생 윤원형은 기세 등등하게 여러 악행을 저지르게 된다. 윤원형이 죄를 지어도, 문정왕후는 당당하게 우리가 없었다면 그 자리에 주상이 앉아있는 게 가당키나 하냐며 따지고 드니 임금인 명종조차 그를 제대로 저지하지 못하였다. 윤원형의 집에는 뇌물이 폭주했고 한성 내에 집이 15채나 됐으며 남의 노예를 빼앗는 건 손으로 세기 버거울 정도에다 오죽하면 죽고 사는 게 그의 손에 달렸다는 말까지 나오게 되었다. 문정왕후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종이에 적어 왕에게 보냈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왕을 불러 반말로 욕을 해대는가 하면 심지어 말을 듣지 않는다며 왕의 종아리나 뺨을 때리기도 하였다고 한다.
< 문정왕후의 불교 사랑 >
한편으로 문정왕후는 조선 왕실의 불교에 대한 사랑이 지극 하였는데, 조선은 성리학을 중심으로 유교를 받들던 국가이지만 선대왕 세종과 세조가 모두 불교로 죽은 부모의 넋을 기리는 등 조선 왕실에선 남모래 불교를 키우고 있었다. 그런데 카리스마 임금 세조 조차 대놓고 하지 못한 불교 정책을 문정왕후가 야심 차게 단행하였다. 바로 승려 보우를 봉은사 주지스님으로 임명한 것이다. 또 문정왕후는 도첩제를 시행하고 전국에 300여 개의 절을 공인하였다. 도첩제란 국가가 출가한 승려에게 발급해주는 일종의 허가증인데, 무허가 승려들이 이제 법적으로 지위를 보장받게 된다. 이 사실을 안 조선 팔도의 유생들이 우르르 들고일어났고 문정왕후의 불교 부흥책을 반대하는 상소가 쏟아졌다. 이에 난감해진 명종이었으나, 끝내 어머니를 이기진 못하였다. 결국 문정왕후가 살아있는 명종 재위 20년 동안 불교 장려책을 쭉 지속되었다. 문정왕후는 죽을 때까지 유언으로 불교를 장려할 정도였으나 조선왕조에 불교가 꽃 피운 시절을 이때가 마지막이었다. 그녀가 죽자 전국 유생들은 숭유억불을 외쳤고, 결국 불교는 다시 찬밥 신세가 되었다.
< 혼란한 조선 >
왕권을 능가하는 무소불위의 권세를 문정왕후였으나 후대의 평가는 그저 시끄러운 암탉이라는 조롱 일색인 것을 보면 당시 얼마나 많은 이들이 그녀를 싫어했는지 알 수 있다. 문정왕후가 조선 최고의 권력을 장악한 여인으로서 나라와 백성을 위해 그 권력을 사용했다면 좋았겠지만, 오직 자기 집안을 위한 힘을 행사하였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비판을 받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문정왕후의 횡포로 왕의 권위는 이미 땅바닥에 떨어진 가운데 명종 재위 기간 22년은 나라 안팎이 혼란 그 자체였다. 안에선 왕실 외척의 폭정이 심각한 수준이었고 탐관오리들이 판치며 부정부패가 극에 달하였다. 게다가 바깥으로는 왜구의 피해가 극심했는데, 명종 10년인 1555년, 왜구가 전남의 강진, 영암, 장흥, 진도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약탈과 살인을 저질렀다. 사실 고려 말부터 조선 건국 초까지도 왜구의 약탈이 빈번하여 세종이 이를 진압하려고 대마도 정벌을 단행했을 정도인데, 1555년에 일어난 을묘왜변은 왜구 난립이 너무 심해서 중종 때 임시로 설치했던 비변사를 상설 기구화하고 왜구 침략에 대비하는 방안을 마련하도록 하였다. 이후에 조선 수군은 더 강화되었는데, 이 때문에 훗날 임진왜란 당시 큰 활약을 하게 된다.
< 의적 임꺽정 >
백성들 태반이 굶주림에 시달리고, 나라에 도적떼가 난립하던 1559년(명종 14년) 이때부터 백정 출신 임꺽정의 활동이 시작되었다. 그는 민심이 흉흉하던 명종시대에 백성들에게는 의적으로 통하던 인물인데, 힘이 장사인 데다 용맹하고 날쌔며 당시 양반 중심 사회에 불만이 많았던 사람으로 기록된다. 처음엔 도당 몇 명과 민가를 돌며 도둑질을 하다가 세력이 커진 후 에는 황해도로 진출하여 주변 고을을 노략질한다. 황해도는 중국 사신들이 왕래하던 곳이라 다른 곳에 비해 백성들의 세금 부담이 더 컸다. 마침내 경기도와 황해도 일대의 관아를 습격하였고 창고를 털어 백성에게 나눠주는 의적이 되는데, 조선 정부는 황해도 각지를 강화하고 병력을 동원해 임꺽정을 잡으려 애썼다. 하지만 그는 백성들에게 의적으로 통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잡으러 관군이 오히려 나쁜 놈 취급을 받는 양상이 되었다. 임꺽정의 난은 조선에서 일어난 반란 중 꽤 장기적이었고 급기야는 조선 전체가 흔들리는 지경에 다다르게 된다. 결국 1562년 임꺽정은 체포되었지만, 부패한 세상은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자연스레 조선 팔도에는 제2, 제3의 임꺽정이 생겨나게 된다.
< 마침내 문정왕후가 사망하다 >
이런 조선 혼란의 근본 원인은 문정왕후에게 있었다. 그녀가 죽기 전까진, 조선 사회는 가망이 없어 보였고, 그래서 명종 포함 대부분의 신하들은 그녀가 죽기만을 기다리게 된다. 마침내 1565년 그녀가 죽자 조선은 초고속으로 평화를 되찾았다. 문정왕후가 죽자마자 가장 먼저 철퇴를 맞은 건 그녀의 동생 윤원형의 일파와 승려 보우였다. 승려 보우는 탄핵된 후 제주도로 유배됐다가 죽었으며 윤원형 역시 강음에 유배되었다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였다. 문정왕후와 윤원형 일파가 사라지니, 이제 명종은 인재를 고르게 등용하고 백성을 어질게 다스리는 정치를 펼치고자 애썼다. 그러자 조정이 안정되고 사회도 차츰 질서를 찾아갔다.
하지만 명종은 그동안 극심한 국정 압박에 시달린 탓인지 병을 얻었고 문정왕후가 죽은 지 2년 뒤 사망하였다. 이때 명종의 나이는 불과 34세에 불과하였다. 명종은 인순왕후 심 씨에게서 순회 세자를 얻었지만 13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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