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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왕조] 조선의 5대 왕 '문종' 그는 누구인가?

by 치킨다이어터 2021. 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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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조선의 4대 왕 '세종' 그는 누구인가? [下]

 

[조선왕조] 조선의 4대 왕 '세종' 그는 누구인가?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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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치다입니다! 저번 세종에 이어 오늘은 제5대 왕 문종에 대해 포스팅해보겠습니다!

 

조선의 제5대 왕(재위 1450∼1452).

 

 문종은 세종과 소헌왕후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났으며, 1421년 8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왕세자로 책봉되었다.

젊은 나이에 일찍 혼인하였으나 첫 번째 부인이었던 휘빈 김 씨는 문종의 사랑을 얻으려 온갖 잡술을 이용하다가 발각되어 폐위되었고, 두 번째 아내였던 순빈 봉 씨는 폭력적이고 동성애적인 기질로 자질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으로 인해 폐위되었으며, 세 번째 아내인 현덕왕후는 원래 후궁이었으나 혼인을 하여 세자빈으로 승격되었다. 그러나 현덕왕후는 왕세자빈 시절이었던 1441년 단종을 낳은 지 하루 만에 산고로 인하여 죽고 말았다. 문종은 세자 시절 세자사 하연을 스승으로 학문을 닦았으며, 어렸을 때부터 인품이 관대하고 후하여 누구에게나 좋은 소리를 들었다. 문종은 학문을 무척 좋아했을 뿐만 아니라 세계 최초의 정량적 강우량 측정기인 측우기를 발명할 정도로 천문학과 산술에 뛰어난 능력을 보였다. 1421년부터 1450년까지 29년간 왕세자로 지내는 동안 문신과 무신을 골고루 등용하였으며, 언관의 언론에 대해 관대한 정치를 폄으로써 언론을 활성화해 민심을 파악하는 데 힘쓰는 등 아버지 세종의 정치를 곁에서 보필하였다. 1442년 세종이 병상에 누워 국정을 다스릴 수 없게 되자 세종을 대신하여 8년간의 대리청정 기간 동안 국사를 처리했었다. 

 

< 문종의 업적 >

문종은 1450년 음력 2월에 세종이 승하하자 그 뒤를 이어 왕으로 즉위하였고 이미 대리청정을 한 덕분에 공백 기간 동안 정사 처리에 문제가 없었다. 세종은 생전에 문종을 염려하여 병석에서도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당시 세자였던 문존 역시 병약하였기 때문에 오래 살지는 못할 것을 예상하고 집현전 학사들을 불러 세손 단종의 앞날을 부탁하였다. 문종은 1440년 3월에 즉위하여 바로 명나라에 책봉 주청사를 보냈고, 그해 음력 5월 명나라로부터 책봉 고명을 받아 정식 국왕으로 즉위하였다. 문종은 재위 기간 동안 언론의 활성화와 역사책 편찬, 병법의 정비 등의 업적을 남겼으며, 유연함과 강함을 병행하는 정치를 실시하려고 했다. 문종은 6품 이상까지 윤대를 허락하는 등 하급 관리들의 말도 빠짐없이 경청하며 열린 정책을 펴는 한편, <동국병감>, <고려사>, <고려사절요>등을 편찬하였다. 문종은 역사와 병법을 정리함으로써 사회 기반을 정착시키고 제도를 확립하고자 하였으며, 문종은 왕세자 시절에 진법을 편찬했을 만큼 국방에도 관심이 많아서 병력 증대를 통해 병법의 정비와 국방의 안정을 꾀하려 하였다. 또 태종 때 만들었던 화차를 새롭게 개발하여 혹시나 있을 전쟁과 국방에 대비하고자 하였다. 

국보 제329호 '공주 충청감영 측우기'

< 문종의 죽음 >

문종은 아버지 세종과 어머니의 삼년상을 연속적으로 치르는 바람에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되어 세종의 고명대신이었던 김종서가 잠시 섭정을 맡았다. 그러다가 결국 즉위한 지 2년 3개월 만인 1452년 음력 5월에 39세의 나이로 경복궁 천추전에서 승하하였다. 문종은 재위 기간이 짧았다는 이유로 그리 부각되지 않았지만 세종 못지않은 현군의 자질을 지니고 있었다. 문종실록을 살펴보면 "여러 신하들이 모두 통곡하여 목이 쉬니, 소리가 궁전에 진동하여 스스로 그치지 못하였고 거리의 소민들도 슬퍼서 울부짖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라고 적혀있었을 만큼 문종은 급서해도 괜찮은 임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또한 세종 때 후반의 치적은 사실상 문종과의 공동 업적이 많았을 정도로 능력이 출중한 임금 중 한 명이었다.

 

< 그 외의 이야기 >

여담으로 문종의 초상화에 관한 일화도 있다. 1636년 병자호란이 끝난 뒤에 일이었다. 대신들이 선원전에서 어떤 왕의 초상화를 발견했는데 초상화 속의 그 왕은 수려한 외모에 짙은 턱수염이 묘사되어있는, 풍채가 위엄이 있고 당당해 보이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이 일을 두고 조정 대신들은 초상화 속의 인물이 조선 제12대 임금인 인종이라고 주장하는 대신들과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대신들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다. 그러다 한 대신이 그 초상화의 뒷면에 있는 배접을 뜯어보니 '문종대왕어진'이라 적혀있었다 한다. 문종의 어진은 결국 여러 난리통에 소실되어 현재 문종의 외모에 대한 정확한 고증은 불가능한 상태이다. 

 

오늘은 이렇게 문종대왕에 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 포스팅을 하면서도 오랜 기간 재위했다면 우리나라 역사가 또 어떻게 달라졌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왕 중 한 명입니다. 이 글을 보시는 여러분들도 이런 생각이 드시나요 : ) ?

다음 포스팅은 제6대 왕 '단종'을 포스팅해보겠습니다.

 

지금까지 치다였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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